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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산의 세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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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재와 비존재
작성자 유석산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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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1-05-13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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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5



벌써 몇 십 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친구와 같이 안국동 네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둘 다 이야기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가 바로 옆까지 

질주해 오는 것도 몰랐다. 

운전사는 급정거를 하면서 크게 클랙슨을 눌렀다. 

우리는 깜짝 놀라 맞은편 인도까지 단숨에 뛰어 건넜다. 

가슴이 설레고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한참 말없이 걷고 있던 친구가 

"그래, 나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문제 안 되지만 

K형은 철학자가 아니오? 철학자가 그렇게 

경박스럽게 놀라서야 쓰겠소?" 라고 빈정댄다. 

자기도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그야 그렇지, P형은 죽을까 봐 놀랐겠지만 

나는 존재가 비존재로 화할까 봐 놀란 것이거든."

 

나도 응수하며 웃어 버렸다.

세상의 가장 중대한,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유와 무의 문제,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 이상이 있을까. 

지금 여기에 존재하던 것이 삽시간에 사라져 무(無)로 바뀌며 

삶이 죽음으로 변한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이며 

중간이나 절충의 내용을 넘어선 모순의 문제이다.

생과 사는 절대의 대립이며 일점의 공통성이나 

한 모퉁이의 일치성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유(有)라는 삶에서 

무(無)라는 죽음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렇게 강렬한 존재에의 의욕을 느끼면서도 

속절없이 비존재인 죽음으로 향하고야 만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삶의 충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쳐 온 인간이 

하나도 남김없이 죽음에의 심연으로 떨어져 

스스로를 잃어버린다는 놀라운 사실이……. 

그러나 우리들의 삶이 바로 이러한 모순의 주인공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형석 저,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에서


첨부파일 9cd74e828ec8f25e061f33fcfa1f570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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