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작은 동양에 있고 발달은 서양에 있다.
정신만이 높고 물질은 낮다는 말이 아니요,
발달만이 장하고 지킴은 작다는 말이
아니다.
높음 낮음도 없다. 다 제 할 것을 할 뿐이다.
정신문화의 씨가 동양의 흙에 떨어지자
역사의 주역은 서양으로 갔다.
그리하여 충분한 분화의 자유로운 토구(討究)가 허락되었다.
만일 동양에 그대로 있었다면 약해지고 갇혔을는지 모른다.
분석에 또 분석, 의심에 또 의심, 비판에 또 비판하는,
가만두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서양의 손으로 갔으니
발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그 물질의 큰 힘으로 동양 사람을 가혹하게 훈련시켰다.
동양은 그 밑에서 자유, 진보가 귀한 것임을 배워야 했다.
이제 오늘은 서구 문명의 폐해가 끝에 오르게 된 때다.
이제 동양은 그 품갚음을 하여 서양을 건질 때가 되었다.
그 교만하던 서양의 입에 동양 소리가 차차 높아가고,
동양은 그 힘든 곤학(學)을 거의 마칠 때가 되어온다.
이제 당한 문제는 동서 종합을 하는 데서 한 단 높은
새 지경에 오르는 일이다.
이러한 세계역사의 테두리와 방향 안에서
우리의 자리와 할 일을 발견해야 한다.
- 함석헌 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